스릴러와 미스터리 독자들은 자기네 장르가 소설 중에서 가장 엄격한 계약을 맺는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건 사실이다. 미스터리는 풀 수 있는 퍼즐과 공정하게 배치된 단서를 약속한다. 스릴러는 점점 높아지는 위기와 자정 넘어서까지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이유를 약속한다. 이 계약이 깨지면 독자는 즉시 알아챈다. 그래서 이 장르에서는 유독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논쟁이 많이 벌어진다. “그냥 별로였다”가 아니라 “40쪽에 나온 단서는 공정하게 심어진 게 아니었다”거나 “그 반전은 등장인물이 그때까지 보여준 모든 것을 거스르는 행동을 해야만 성립한다” 같은 식이다.
이렇게 촘촘한 검증이 이뤄지는 장르이기 때문에 오히려 몇몇 의견은 실제보다 훨씬 견고한 통념으로 굳어버렸다. 아래는 그런 통념 다섯 가지를 반박한다. 하도 많이 반복돼서 이제 거의 사실처럼 통하는 장르의 상식들이다. 어떤 책이 안 맞았다면 그 취향을 존중해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왜 안 맞았는지 다시 한번 들여다보자는 얘기다. 대개 그 이유는 다들 되풀이하는 규칙보다 훨씬 구체적인 데 있다.
스릴러를 완성하는 건 반전이 아니라 불안감이다
좋은 스릴러를 하나 꼽아보라고 하면 대부분 제일 먼저 “반전”부터 언급한다. 이 장르가 3막의 대반전과 워낙 강하게 엮여버린 나머지 많은 독자가 이제 그 책이 자신을 속였는지 여부만으로 스릴러를 평가한다. 마치 반전이 상품이고 그 앞의 모든 내용은 포장지인 것처럼.
이건 거꾸로 된 생각이며 증명하기도 쉽다. 실제로 다시 읽은 스릴러가 몇 권이나 되는지 떠올려보면 된다. 오로지 반전 때문에 재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전은 놀라움에 기대는 장치라 두 번째로 읽는 순간 작동 원리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이미 알고 있으니 긴장이 무너진다. 재독을 버티는 건 오히려 불안감이다.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확신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든 없든 상관없이 장면마다 조금씩 쌓여가는 감각 말이다. 태나 프렌치의 『숲속의 살인』이 바로 이 원리로 굴러간다. 프렌치는 초반부터 이 화자가 독자에게 거짓말을 할 거라고 미리 알려주는데도 소설은 끝까지 팽팽하다. 긴장의 정체가 애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도저히 마주할 수 없는 진실 주위를 맴도는 근본적으로 믿을 수 없는 남자를 지켜보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잘못됐다는 건 첫 줄부터 이미 알고 있다. 그걸 숨겨야 이 책이 재밌어지는 게 아니다.
반전 자체는 정당한 도구다. 『나를 찾아줘』는 중반의 대전환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 작품이다. 다만 반전 하나로 스릴러 전체의 완성도를 재단하는 습관은 훨씬 화려하지 않은 작업을 해내는 책들을 과소평가하게 만든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오직 속도와 목소리, 불안감만으로 견딜 수 없는 긴장을 끝까지 끌고 가는 그런 작업 말이다. 독자를 속이지 못했다고 해서 그런 책이 덜 훌륭한 게 아니다. 오히려 더 인정받아야 할 때가 많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 이제는 장치가 아니라 마케팅 문구다
지난 10년 가까이 “신뢰할 수 없는 화자”는 특정 서술 기법을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 하나의 장르 딱지처럼 쓰여왔다. 출판사도 독자도 이 표현을 “예상 못 한 반전이 있는 심리 스릴러”쯤으로 뭉뚱그려 쓰면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완전히 다른 효과를 노리는 책들 표지에 똑같이 찍어댄다.
이 기법이 제대로 작동할 때는 하는 일이 명확하다. 화자가 말하는 것과 실제로 일어난 일 사이의 간극 자체가 그 인물을 파헤치는 열쇠가 된다. 『걸 온 더 트레인』에서 레이첼의 음주는 독자에게서 플롯의 장치를 숨기려고 넣은 설정이 아니다. 레이첼의 신뢰할 수 없음, 조각난 기억, 자기 삶조차 스스로 믿지 못하는 상태, 그 자체가 이 소설이 레이첼을 두고 펼치는 감정적 논증 전부다.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핵심이지, 독자와 핵심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다.
그 이후 장르를 뒤덮은 건 다른 버전이다. 결말을 전달하기 위한 배송 수단으로만 존재하는 화자, 그 인물이 실제로 가질 법한 어떤 이유도 없이 사실 하나를 숨겼다가 나중에 작가가 그걸 그냥 공개해버리는 구조. 이건 캐릭터 묘사가 아니라 손기술이 훤히 보이는 마술이다. 판별법은 간단하다. 이런 심리를 가진 바로 이 인물이 왜 하필 이 사실을 자기 자신에게든 독자에게든 숨겼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 신뢰할 수 없음은 창작적 결정이 아니라 마케팅용 특징일 뿐이다. 리안 모리아티의 『빅 리틀 라이즈』가 이 구조적 은폐를 정당하게 얻어내는 이유는 “트리비아 나이트에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이 책의 진짜 주제, 즉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다들 못 본 척한 가정폭력이라는 주제와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장르에 쏟아진 작품 상당수는 이 트릭의 형태만 빌려오고 정작 그 형태가 필요했던 이유는 빌려오지 않는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여전히 올해 베스트셀러 상당수보다 정교하게 플롯을 짠다
크리스티를 “고전이라 존경은 받지만 실제로 읽지는 않는 작가” 서가에 꽂아두기는 쉽다. 이름은 자주 인용하면서 정작 펼쳐보진 않는 작가들이 모이는 그 서가 말이다. 다른 장르에서라면 그럭저럭 넘어갈 실수지만 미스터리에서는 좀 다르다. 크리스티를 역대 최다 판매 소설가로 만든 진짜 실력은 요즘 스릴러 대부분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정밀한 기계적 플롯 설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등장인물 열 명과 섬 하나, 동요 하나만으로 모든 단서를 완벽하게 공정히 배치하면서도 밝혀지는 그 순간까지 해답을 불가능해 보이게 만든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미스터리 장르 역사상 가장 대담한 구조적 트릭 중 하나를 성공시켰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독자에게 기술적으로 거짓말은 한 줄도 하지 않으면서 얼마나 많은 걸 숨길 수 있는지 보여주는 교과서로 남아 있다. 주말 안에 다 읽히도록, 그리고 하나의 중심 반전을 축으로 설계되는 요즘 심리 스릴러 대부분은 이런 다중 용의자, 모든 디테일이 맞물리는 정교한 퍼즐 구성을 시도하지 않는다. 다른 종류의, 더 좁은 의미의 놀라움을 노린다. 페어플레이 추리보다 지속되는 긴장감 쪽에 무게를 두는 방식이다. 이것도 물론 그 나름대로 정당한 장르다. 다만 크리스티가 하던 작업보다 더 세련된 건 아니다. 오히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건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장르가 퍼즐 구성보다 분위기와 목소리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점점 희귀해진 진짜 플롯 실력의 문제다. 크리스티를 그저 고풍스럽다고 치부하는 독자는 이 장르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것 중 가장 정교한 기계적 설계 몇 편을 그냥 지나쳐버리는 셈이다.
『나를 찾아줘』의 결말은 회피가 아니라 이 소설의 논지 그 자체다
어떤 스릴러 결말도 『나를 찾아줘』만큼 두고두고 재론되지는 않는다. 하도 자주 반복돼서 이제 정설처럼 굳어버린 불만은 이렇다. 길리언 플린이 200쪽 넘게 빈틈없는 긴장을 쌓아놓고는 정작 결말에서 그걸 풀어내지 않았다는 것. 에이미는 처벌받지 않고 닉은 곁을 떠나지 않으며 아무것도 응징되지 않는다. 독자는 응당한 대가를 기대했는데 받지 못했고 이걸 구조적 실패로 읽는 담론이 많다. 마치 플린이 결말을 다 쓰지 못하고 모호함으로 때웠다는 듯이 말이다.
이런 독해는 이 소설이 실제로 다루는 주제를 놓친다. 『나를 찾아줘』는 누가 누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를 밝히는 미스터리가 아니다. 그건 상당히 이른 시점에 이미 드러난다. 이 소설은 결혼이라는 연기, 둘 다 뛰어난 거짓말쟁이인 두 사람이 조작 위에 세워진 관계에 갇혀 있다는 데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결말은 정의를 전달하는 데 실패한 게 아니라 정의를 전달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 소설의 논지다. 닉이 에이미의 정체를 다 알면서도 곁에 남는 건 이 소설 전체에서 두 사람이 하는 가장 정직한 행동이다. 자신도 그 연기에 그만큼 사로잡혀 있다는 것, 떠나는 순간 이 결혼이 애초에 진짜였던 적이 없었음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행동이다. 깔끔하게 응징되는 결말이었다면 이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에 관해 쌓아온 모든 논증을 스스로 배신하는 셈이 된다.
에이미가 벌받기를 바라는 건 지극히 합당한 감정적 반응이다. 다만 그 처벌이 없다는 이유로 이 결말을 회피라고 부르는 건 애초에 어떤 책을 읽고 있었는지를 착각한 셈이다. 『나를 찾아줘』는 애초에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소설이 아니었다. 어느 쪽도 실제로는 떠날 수 없는 결혼이라는 끔찍한 형태를 향해 나아가는 소설이었고 그 논증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결말은 이것뿐이었다.
코지 미스터리는 지금 받는 대접보다 더 인정받아야 한다
코지 미스터리는 이 장르를 꽤 많이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종종 “편안한 간식” 취급을 받는다. 나쁘지 않지만 심리 스릴러나 문학적 범죄소설보다는 한 단계 가벼운 무언가로 말이다. 리처드 오스먼의 『목요일 살인 클럽』은 잘 만들어졌다는 평가보다 사랑스럽다는 평가를 더 많이 받고 애거사 크리스티 자신의 좀 더 온화한 작품들조차 “순한 맛 크리스티” 정도로 읽히는 경우가 많다. 페어플레이 퍼즐 설계와 폭력성·긴장감이 낮은 서술이 애초에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었다는 증거로 읽히기보다는 말이다.
이런 위계는 창작적 난도라는 기준에서 보면 거꾸로 서 있다. 어두운 심리 스릴러에는 긴장을 만들어낼 도구가 잔뜩 있다. 폭력, 지속되는 불안감, 신체적 공포, 독자가 아끼는 인물에게 곧 끔찍한 일이 닥칠 거라는 끊임없는 위협까지. 코지 미스터리는 이런 걸 거의 다 스스로 포기하고 시작한다. 지속적인 위협도, 자극적인 묘사도, 탐정에게 닥치는 실질적 위험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도 300쪽 가까이 독자를 붙잡아둘 수 있는 건 공정하게 단서가 배치되고 깔끔하게 풀리는 퍼즐 그 자체, 그리고 독자가 계속 함께 있고 싶어지는 등장인물들뿐이다. 이건 더 쉬운 과제가 아니라 더 어려운 과제다. 안전망 없이 짜는 플롯이기 때문이다. 불안감으로 허술한 해답을 덮어버릴 수가 없다.
오스먼의 목요일 살인 클럽 시리즈는 이걸 정말 잘 해낸다. 은퇴자 네 명이 실제로 복잡한 살인 사건을, 끝까지 논리가 무너지지 않는 단서들로 풀어내면서도 위기의 무게를 단 한 번도 축소하지 않는다. 이걸 “그냥 코지니까”로 치워버리는 건, 서가에서 가장 어두운 스릴러가 하려는 것과 똑같은 과제를 더 어려운 조건에서 해내고 있는 장르 하나를 과소평가하는 셈이다.
통념을 반복하는 대신 완성도를 두고 논쟁하기
위의 의견들은 어떤 책이 안 맞았던 사람에게 억지로 좋아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스릴러·미스터리 독자들이 다른 어느 독서 커뮤니티보다 이미 잘하고 있는 일, 즉 단서 하나하나와 선택 하나하나를 놓고 특정 작품이 실제로 무얼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일을 더 해달라고 요청할 뿐이다. 가장 반복하기 쉬운 장르 전체의 규칙으로 도피하는 대신 말이다. “반전이 있어야 좋은 스릴러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는 게으른 트릭이다”, “크리스티는 고풍스럽다”, “『나를 찾아줘』의 결말은 실패다”, “코지 미스터리는 가볍다” — 이 다섯 가지 모두 어떤 책에는 딱 들어맞고 다른 책에는 전혀 안 맞는다. 그러니 그냥 받아들이기보다는 논쟁할 가치가 있다.
애초에 페어플레이와 세심한 주의 위에 세워진 장르이기에 가능한 매력이다. 단서가 공정하게 심어지지 않았을 때 알아채는 독자라면, 비판이 공정하게 성립하지 않았을 때도 알아챌 수 있는 독자다. 그 같은 예리함을 책뿐 아니라 그 책을 둘러싼 담론에도 똑같이 들이대보면, 이 장르는 덜 흥미로워지는 게 아니라 더 흥미로워진다.
예상했던 반전, 완전히 허를 찔렀던 반전, 지금도 여전히 갑론을박 중인 결말까지 전부 Bookdot에 기록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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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 요즘 스릴러에서 신뢰할 수 없는 화자 설정이 남용되고 있나요?
- 장치로서보다 마케팅 신호로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화자의 왜곡 그 자체가 캐릭터를 드러낼 때는 제 몫을 하지만, 3막의 반전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하고 독자를 속여야 할 서사적 이유가 없을 때는 손쉬운 트릭에 그친다.
- 스릴러가 좋은 작품이 되려면 반드시 반전 결말이 있어야 하나요?
- 아니다. 반전은 만족감을 주는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 장르의 필수 조건이 아니다. 독자가 인물보다 더 많이 알고 있거나 결말이 놀랍기보다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서서히 조여오는 불안감이나 인물의 붕괴로 끌고 가는 작품도 얼마든지 손에서 놓기 힘들 수 있고, 오히려 재독에는 더 강할 때가 많다. 독자가 결말을 미리 알아도 무너질 게 없기 때문이다.
- 코지 미스터리는 심리 스릴러보다 덜 진지한 글쓰기인가요?
- 아니다. 도구는 더 적게 쓰면서 비슷한 난이도의 과제를 수행하는 쪽에 가깝다. 코지 미스터리는 폭력이나 지속적인 긴장감, 자극적인 묘사 없이도 페어플레이 퍼즐만으로 독자를 붙잡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플롯 설계 자체가 책 전체를 떠받쳐야 한다. 이건 야심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약이 그만큼 까다로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