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연애 소설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빠지는 모습을 지켜보게 합니다. 서간체 로맨스는 어깨너머로 읽게 합니다. 편지와 이메일, 식탁 위에 남겨진 쪽지가 그대로 손에 쥐어지고, 각자가 무슨 말을 하기로 했는지 그리고 무슨 말을 빼기로 했는지가 똑같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 작은 차이가 로맨스의 느낌을 통째로 바꿉니다. 안전한 거리에서 들려주는 서술이 없습니다. 작가가 “낯선 설렘을 느꼈다”고 알려 주지도 않습니다. 페이지 하나와 목소리 하나가 있을 뿐이고, 어느새 인물들만큼이나 다음 편지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받은 메시지를 인정하기 민망할 만큼 여러 번 다시 읽어 본 적이 있다면 이 트로프가 왜 통하는지 이미 아는 셈입니다. 아래에서 그 매력을 먼저 짚고 TBR에 올려 둘 만한 책 열두 권을 소개합니다.
편지는 왜 사랑을 더 가깝게 만드는가
말은 즉흥이고 글은 구성입니다. 누군가에게 글을 쓰려고 앉은 인물은 어조와 솔직함의 정도, 자기를 얼마나 드러낼지를 두고 수십 가지를 고릅니다. 로맨스는 바로 그런 선택으로 만들어집니다.
거리도 한몫합니다. 편지 속에서는 수줍은 사람이 대담해지고 경계심 강한 사람이 다정해집니다. 익명이라면 얼굴을 맞대고는 도저히 못 할 이야기도 털어놓습니다. 서간체 로맨스의 좋은 작품들은 대개 방에서의 모습과 종이 위의 모습이 다르다는 점에 기대고 있습니다.
기다림도 있습니다. 며칠 걸린 답장이나 새벽 두 시에 도착한 이메일은 사건 하나 없이도 긴장을 만듭니다. 독자도 인물과 같은 공백을 느낍니다. 슬로우 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아는 즐거움입니다. 편지는 지연이면서 늘어지는 느낌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가 슬며시 참여자가 됩니다. 양쪽의 대화를 다 보니 인물보다 먼저 알아채는 일이 많습니다. 두 사람이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마음이 자라는 걸 지켜보는 그 극적 아이러니가, 이 장르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결말들의 동력입니다.
시작을 연 고전들
서간체는 현대 로맨스 장르보다 오래됐고 초기 작품들은 지금도 힘이 있습니다.
키다리 아저씨(Daddy-Long-Legs, 1912)의 저자는 진 웹스터입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로 이루어집니다. 고아 소녀 제루샤 “주디” 애벗은 익명의 후원자 덕에 대학에 다니는데, 한 달에 한 번 그에게 편지를 써야 하고 답장은 오지 않습니다. 주디는 언뜻 본 그림자 때문에 그를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편지는 재치 있고 관찰력이 좋고 갈수록 속마음을 드러냅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은 말로 로맨스가 자라고, 그 매력은 백 년 넘게 쏟아진 모방작을 거치고도 살아 있습니다.
Sorcery and Cecelia, or The Enchanted Chocolate Pot(1988)은 패트리샤 C. 레드와 캐롤라인 스티버머가 썼습니다. 섭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로, 사촌 사이인 케이트와 시시가 주고받는 편지로 진행됩니다. 두 사람은 각자 마법이 얽힌 음모에 휘말리면서 로맨스도 키워 갑니다. 이 책은 두 작가가 인물 하나씩을 맡아 쓴 편지 놀이에서 출발했고, 그 장난기가 페이지마다 묻어납니다. 재치와 약간의 마법이 섞인 서간체 로맨스를 원한다면 좋은 선택입니다.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1813)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으로 구조가 서간체는 아닙니다. 그래도 가장 유명한 독서 장면은 편지입니다. 헌스포드에서 실패한 청혼 뒤에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보낸 긴 편지는 소설 전체의 경첩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전부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편지는 대화에는 없는 일을 합니다.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설득(Persuasion, 1817)도 오스틴의 작품이고, 이 장르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장 하나를 남겼습니다. 입으로는 마음을 말하지 못하는 웬트워스 대령이 앤에게 씁니다. “You pierce my soul. I am half agony, half hope.” 편지는 앤이 발견할 자리에 놓이고, 이만큼 많이 흉내 낸 고백은 영문학에서 드뭅니다.
편지가 중심인 책들
여기서부터는 글을 주고받는 일 자체가 주된 사건입니다.
건지 감자껍질 파이 문학회(The Guernsey Literary and Potato Peel Pie Society, 2008)는 메리 앤 섀퍼와 애니 배로스의 작품입니다. 1946년 런던의 작가 줄리엣 애슈턴이 제2차 세계대전 뒤 건지섬 주민들과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합니다. 따뜻하면서도 약간 멍이 든 공동체의 초상이고, 줄리엣과 도시 애덤스의 느린 로맨스가 우정과 역사 곁에서 자랍니다. 참을성 있게 읽을수록 돌려주는 게 많은 온화한 책입니다.
Dear Mr. Knightley(2013)는 캐서린 레이가 썼고 『키다리 아저씨』의 울림을 현대 독자에게 전합니다. 위탁 가정에서 자랐고 고전 소설 속 인물들에게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서맨사 무어가 익명의 후원자로부터 대학원 장학금을 제안받습니다. 조건은 진행 상황을 편지로 알리는 것입니다. 문학에서 빌려 온 목소리가 조금씩 자기 목소리가 되어 가는 과정이 소설을 이끕니다.
Letters from Skye(2013)는 제시카 브록몰이 썼습니다. 1912년 스카이섬에 사는 시인 엘스펏 던이 미국인 청년 데이비드 그레이엄에게서 팬레터를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두 사람의 편지는 몇 해에 걸쳐 제1차 세계대전을 지나며 깊어지고, 1940년을 배경으로 한 두 번째 시간대에서는 엘스펏의 딸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찾아 나섭니다. 이 목록에서 휴지를 곁에 두고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Where Rainbows End(2004)는 미국판 제목이 Love, Rosie이고 세실리아 아헌이 썼습니다. 로지 던과 알렉스 스튜어트의 수십 년을 편지와 쪽지, 이메일, 메신저 대화로 따라갑니다. 단짝인 두 사람은 진심을 말할 때를 계속 놓칩니다. 이 형식 때문에 놓친 기회들이 보는 사람에게는 거의 아플 정도입니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가는 트로프를 문서로 들려주는 책입니다.
현대의 서간체: 이메일과 쪽지, 마법 타자기
현대 로맨스는 이 형식을 새롭게 쓰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Attachments(2011)는 레인보 로웰의 작품입니다. 1999년을 배경으로, 신문사의 인터넷 보안 담당자 링컨 오닐이 주인공입니다. 그의 일은 걸러진 직원 이메일을 읽는 것인데, 동료인 베스와 제니퍼가 주고받는 메시지를 읽다가 만난 적도 없는 베스의 목소리에 빠져듭니다. 누군가에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일의 윤리와 즐거움을 다룬, 웃기고 다정한 책입니다.
Simon vs. the Homo Sapiens Agenda(2015)는 베키 앨버탈리의 작품입니다. 열여섯 살 사이먼 스파이어는 블루라는 이름으로만 아는 같은 학교 학생과 이메일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다른 학생이 그 이메일을 발견해 사이먼을 협박하기 시작하면서 블루가 누구인지가 급한 문제가 됩니다. 이메일이 책의 심장이고, 블루의 정체라는 수수께끼 덕에 로맨스에 가벼운 퍼즐이 있는 쪽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맞습니다.
To All the Boys I’ve Loved Before(2014)는 제니 한의 작품입니다. 라라 진 코비가 부칠 생각 없이 쓴 러브레터 다섯 통이 본인도 모르게 발송되면서 시작됩니다. 편지는 구조가 아니라 설정이지만 트로프는 같습니다. 사적으로 쓴 말이 공개적으로 전달되고, 그 착오에서 뜻밖의 로맨스가 이어집니다.
Divine Rivals(2023)는 레베카 로스의 작품입니다. 전쟁을 앞둔 판타지 세계에서 라이벌 신문 칼럼니스트 아이리스 윈나우와 로먼 킷이 서로인 줄 모른 채 마법 타자기로 글을 주고받기 시작합니다. 둘의 편지는 직접 마주 보고 하는 말보다 솔직해집니다. 경쟁과 친밀감이 서로 다른 채널에서 벌어지는 라이벌에서 연인으로 가는 이야기입니다.
The Flatshare(2019)는 베스 오리어리가 썼습니다. 런던의 원룸을 같이 쓰고 침대까지 나눠 쓰는 특이한 계약을 한 티피 무어와 리언 트웜리가 주인공입니다. 리언은 밤에 일하고 티피는 낮에 일해서 처음에는 마주칠 일이 없습니다. 둘은 집 안 곳곳에 남긴 쪽지로 소통하고, 쪽지는 실용적인 내용에서 점점 사적인 내용으로 바뀝니다. 가볍고 따뜻하고 약간 웃긴 서간체 로맨스를 원하는 독자에게 권합니다.
Letters to the Lost(2014)는 브리지드 케머러의 청소년 소설입니다. 줄리엣 영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무덤에 편지를 놓아 둡니다. 묘지에서 봉사 활동을 하던 데클런 머피가 그중 한 통을 발견하고 답장을 씁니다. 서로 누구인지 모릅니다. 이야기 한가운데 놓인 상실감 덕에 이 편지들은 다른 책보다 무게가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로맨스가 아닌 책 한 권
84, Charing Cross Road(1970)는 헬렌 한프가 썼고, 뉴욕의 작가인 한프와 런던의 서점 직원 프랭크 도얼이 20년 동안 주고받은 실제 편지를 엮었습니다. 전통적 의미의 로맨스는 아니지만 같은 것을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장거리 관계를 다룬 책 중 가장 애정 어린 한 권입니다. 이 트로프에서 얻는 즐거움이 같은 것에 열광하는 두 사람의 편지 그 자체라면 이 책을 읽으세요.
서간체 로맨스를 더 즐겁게 읽는 법
작은 습관 몇 가지가 책을 더 좋게 만듭니다.
빠진 것을 눈여겨보세요. 좋은 서간체 소설은 인물이 쓴 글과 느끼는 마음 사이의 틈을 독자가 알아채리라 믿습니다. 줄을 그어 지운 문장, 끝내 나오지 않는 화제, 너무 빨리 온 답장을 살펴보세요.
처음 몇 쪽은 천천히 읽으세요. 서간체는 처음엔 조각난 느낌일 수 있습니다. 책마다 오십 쪽쯤 시간을 주면 목소리가 사람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형식을 번갈아 보세요. 어떤 책은 여러 낭독자가 서신 상대를 각각 맡는 오디오북으로 들으면 훌륭합니다. Attachments 같은 책은 이메일의 활자 모양이 한몫하니 종이로 읽는 편이 낫습니다.
좋았던 점을 기록하세요. 서간체 로맨스 하나를 끝내고 더 읽고 싶다면 끌린 이유가 편지 자체인지, 인물 사이의 거리인지, 익명성인지 적어 두세요. 이유마다 다음에 읽을 책이 달라집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이 트로프가 처음이라면 Attachments와 The Flatshare가 가장 쉬운 입구입니다. 배경이 현대고 분위기가 가볍습니다. 고전을 원하면 짧고 완벽한 키다리 아저씨가 있습니다. 마음 한 조각을 가져갈 책은 Letters from Skye와 Where Rainbows End입니다. 판타지 기운이 도는 로맨스라면 Divine Rivals와 Sorcery and Cecelia가 기다립니다.
무엇을 고르든 이 트로프가 다른 트로프에는 드문 일을 한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두 사람이 한 문장씩 써 가며 서로에게 알려지길 바라게 되는 순간을 귀로 듣게 해 줍니다.
편지로 이어지는 사랑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별점과 좋았던 문장을 남기고, 다음 TBR까지 Bookdot에서 한 곳에 모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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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 서간체 로맨스란 무엇인가요?
- 서간체 로맨스는 등장인물이 서로에게 또는 자신에게 쓴 편지, 이메일, 문자, 일기, 쪽지 같은 글로 전부 혹은 일부를 풀어 가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독자는 인물이 종이 위에 적기로 한 말을 통해 관계를 알게 되고, 적지 않은 말에서 오는 여운까지 함께 느낍니다.
- 서간체 로맨스 추천작은 무엇인가요?
- 진 웹스터의 『키다리 아저씨』, 메리 앤 섀퍼와 애니 배로스의 『건지 감자껍질 파이 문학회』, 레인보 로웰의 『Attachments』, 베키 앨버탈리의 『Simon vs. the Homo Sapiens Agenda』, 레베카 로스의 『Divine Rivals』, 베스 오리어리의 『The Flatshare』, 세실리아 아헌의 『Where Rainbows End』(미국판 제목 Love, Rosie)가 입문작으로 좋습니다.
- 서간체 소설은 왜 사랑 이야기와 잘 어울리나요?
- 글로는 입으로 못 하는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줍은 사람이 유쾌해지고 익명의 상대 앞에서는 솔직해집니다. 답장이 늦어지는 것만으로도 키스 장면만큼 긴장이 생깁니다. 독자는 두 사람이 인정하기 전에 마음이 쌓이는 과정을 먼저 알아채는 제3자가 됩니다.